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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요?

이 글은 2009.10.31 오마이뉴스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쓴 글입니다.

귀농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요?

2009년 한 신문사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원자재 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 회장은 "진로를 고민한다면 농업분야에 뛰어들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또 "앞으로 세계경제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원자재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나빠질 경우 각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결국 실물자산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그중에서 농작물 가격의 상승이 두드러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면서 자신이라면 한국비무장지대 근처에 농지를 사두겠다면서 투자차원에서 수익률이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얼마 전에는 욘사마라 불리는 배우 배용준씨가 농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 이상 농부가 된다는 것이 소수의 선택이 아니라 주류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투자가의 조언과 유명한 배우의 꿈을 따라서 농부가 될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는 대개 투자할 돈이 많은 자본가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배우도 아니다. 돈벌이가 아니라 매일 먹고 사는 문제인 밥벌이에 자유롭지 않은 서민이고 '농사지으면 장가나 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청춘에게 귀농하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귀농은 올인(all-in)하는 것이다. 도시의 집과 직업, 이웃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 인생의 새로운 개척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이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귀농학교에서는 그래서 귀농을 결정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귀농을 포기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성과로 삼고 있다. 조급한 마음과 섣부른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천천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지난 97년 구제금융 때 정부의 귀농정착융자금만 믿고 깊은 고민과 준비 없이 농촌으로 간 사람들이 빚을 짊어지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뼈아픈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억대 수익 올리는 농부? 대체 어디 이야기인지

"고소득 보장"이라고 돼 있는 광고는 본래 사기성이 농후하다. 농업이 블루오션이라면서 큰 돈벌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들이 요새 늘고 있다. 지금은 "블루베리가 재미가 좋다"면서 돈 벌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몇 년 전에는 그게 오미자였다"고 말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매스컴에선 쉴 새 없이 부자가 된 농부를 내세우며 현혹한다.

만일 당신이 '도시에서 월 300~400만원은 벌었으니까, 시골에 가서는 최소 월 200만원 이상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귀농을 다시 고려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귀농자는 물론 평생을 농사지어온 분들도 쉽지 않다. 돈을 벌려면 도시에 남아있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낫다. 억대농부가 가능하다고 매스컴이 난리다. 내가 아는 한 귀농자가 그런 소득을 올렸다고 들어본 예가 없을뿐더러 더러 있다고 해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품투성이다.

홍성으로 귀농한 9년차 한 귀농선배는 부부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어 한해 24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주변에서 '독종'이라고 불리는 그 선배부부보다 더 부지런할 수 있는 귀농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억대농부라니 어떻게 하면 그만큼 벌 수 있을까?

"귀농해서 얼마나 소득을 올려야 먹고사나요?"
"얼마나 소득을 올릴 수가 있을까요?"

자주 듣는 말이지만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건축가들도 자주 듣는 질문이 있는데 '건축비가 평당 얼마나 들까요?'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준다고 한다. "평당 100만원에서부터 1억원까지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해줄 수 있습니다."

소득 올리고 싶으면 밤에 랜턴 켜고 농사지어야 한다.

어떤 귀농자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다. 한 사람이 자신이 지난 달에 30만원밖에 안 썼다고 은근 자랑을 하니까 옆에 있던 선배 귀농자가 대뜸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 써대면서 어찌 살아갈꼬?" 좀 오버한 느낌도 있지만 농사를 짓고 살면 큰돈을 들일 일이 없다. 누구는 200만원도 부족할 테지만 누구는 100만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어떤 조직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생태귀농운동을 낭만귀농이라고 분류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온 적이 있다. 겨우 텃밭정도의 규모에 농소득도 부진한 것을 귀농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면서 우리를 비웃는 것이 틀림없다. 근데 웃음이 나는 것은 어떤 귀농자의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귀농을 했는데 소득이 너무 적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농지를 더 빌리고 기계도 사는 등 영농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수확 철이 다되어 사람 품이 필요한데 품값을 치를 돈이 없어, 자신은 도회지로 일을 나갔단다. 그렇게 자신이 밖에서 벌어온 돈으로 품값을 치르는데 이건 뭐가 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단다. 분명 효율성과 이윤을 따진다면 이게 나은 방식이긴 한데 뭔가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농부 빠홈의 비극적인 결말이 떠오른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욕심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다. 소박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서,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많은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좇다가 젊음도 가족도 건강도 잃는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살 수 있건만,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욕심으로 인생을 저당 잡힌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금욕적인 삶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소를 타듯 한쪽은 돈벌이, 다른 한쪽은 행복을 놓고 균형을 찾아야한다. 소득을 많이 올리려면 광부처럼 밤에도 헤드 랜턴을 켜고 농사를 지어야한다.

귀농, 직업 아닌 정년 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

정답은 없지만,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월 50만원 정도 농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귀농자다. 거기에 만족할 수 있다면 주변에 피어나는 풀꽃에 눈길을 줄 수 있고 끼니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혼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약초를 찾아 산을 돌아다닐 시간도 생길 것이다.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켜야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온전히 독립된 인격으로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농부의 삶이다. 소득에 천착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농사만 짓고 살 일이 아니다. 농촌에 모두가 농사만 짓고 사는 농민들밖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농촌사회도 사람 사는 곳이니 치과의사, 예술인, 교사, 보일러기사와 같은 사람들이 당연 필요하다. 귀농자들이 도시에서 써먹던 기술을 잘 쓴다면 마을공동체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녹색일자리, 일자리 한다지만 귀농은 일자리나 직업의 선택이 아니다. 삶의 뿌리를 통째로 옮겨 다시 심는 일이며 정년 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다.

1_결심, 하셨나요 빨리 가서 시골서 고생하는 게 나아요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삶을 허비하지마세요

‘농심’으로 돌아가는 게 귀농
생활의 모든 면 고려해야 하지만
알수록 계산하고 재는 능력만 커져
사업한다 돈만 쓰지 않는다면
결행은 빠를수록 좋아
삶 허비하지 말고 마음·직관 따르길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지.’ 누구나 하는 얘기입니다. 욘사마 배용준씨도 농부가 되고 싶다(2009)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은퇴 후 70% 이상이 시골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시골로 내려가진 않습니다.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지요. 귀농, 말은 돌아간다는 얘기지만 귀농학교에 오는 분들은 거의 도시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제 손으로 씨 한번 뿌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형편에 환금작물로 뭘 선택해야 돈이 되는지 물어옵니다. 낯설고 험한 길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귀농하려는 사람보다 주변 분들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어디서 홀려가지고 정신이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온통 말리는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귀농은 탈출입니다. 출퇴근에 매여서 콩나물시루같은 지하철을 타기도 싫고요,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 나와 상관없는 규정에 따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식구가 왜 식구입니까?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한다고 식구(食口)인데 가족이 한데모여 밥 한 끼 먹을 날이 없습니다.

자급본능이라는게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제 집을 지을 줄 아는데 인간만 그런 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건축본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점화본능입니다. 겨울이 되면 얼른 봄이 와서 언 땅만 녹길 기다립니다. 땅을 갈고 싶은 경작본능입니다. 명상을 한다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온갖 잡생각이 멈추질 않습니다. 호미 들고 30분만 풀을 매보세요. 머릿속이 깨끗해집니다. 귀농은 어쩌면 우리 본능을 되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만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농심(農心)으로 돌아가는 게 귀농이라고 봅니다. 요새 귀농과 귀촌을 구분해야한다는 말이 나돕니다. 취농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데 밥벌이니 전원농이니 구별할 일은 아닙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옮겨놓는 일은 개인의 입장에서도 문명의 전환입니다. 직장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생활의 모든 면을 고려해야합니다. 그렇다고 귀농준비에 10년씩 걸리는 것은 문제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알면 알수록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자꾸 계산하고 재는 능력만 커지거든요. 귀농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귀농을 결행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준비가 덜 돼서 아마 고생께나 할 겁니다. 그래도 빨리 가서 시골에서 고생하는 게 낫습니다. 사업을 벌인다고 덜컥 돈쓰는 일만 벌이지 않는다면 결행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막상 내려가려니 발목을 잡는 일도 생기고 솔직히 점점 두렵습니다. 걱정 마세요. 시골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애플의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젠 잡스없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와 상관없이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방망이질하고 있습니다. 여느 예언자의 가르침보다 빛나는 메시지입니다. 저한테는 빨리 시골로 내려가라고 부추기는 선동문으로만 들리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허비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보짓이라도 두려워마세요!(Stay Hungry, Stay Foolish)’

마지막 문장은 잡스가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지구백과’라는 책의 뒷면에, 아침 해가 솟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시골도로를 찍은 풍경 위에 쓰인 문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2_무턱대고 땅부터 산다고요 빌려 쓸 땅 많으니 ‘천천히’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땅 사는 것, 배우자 만나는 것과 같아
악연 피하려면 5W 기억해야
적당한 가격인지, 물 문제는 어떤지
함께 살 배우자·동료 맘에 들어야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알아보길

귀농학교에서는 무턱대고 땅부터 사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땅을 보는 안목도 없고 내지인에게 파는 가격과 외지인에게 내놓는 가격차가 두 배가 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값을 더쳐준다고 해도 좋은 땅이 토박이들이 아닌 타지의 객들에게 남아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빌려 쓸 땅은 많으니 한 두 해 안에 자리를 잡는다는 생각은 마시고 농사짓다보면 주변에서 괜찮은 조건의 땅이 나옵니다. 농사일에 힘이 부치는 연로하신 분들이 땅을 내놓기 시작하기 때문인데 다소 시간은 걸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농사 열심히 짓고 마을에 뿌리내리려 애쓰고 있으면 기회가 옵니다. 힘들게 농사지어 가꿔 온 땅을 농사일도 모르거나 농사와 무관한 사람에게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게 농부의 마음입니다.

지금은 이 같은 조언이 잘 먹혀들지 않습니다. 최근 수년간 급격히 농지가 감소하고 농지가격도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사이 10만ha의 농지가 사라졌습니다, 강원도 경지면적 11만ha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1968년에 231만9000ha 이던 것이 2010년에 와서 171만5000ha로 줄어들었습니다. 식량자급률을 30%만 잡아도 165만ha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추세라면 3년 안에 최소 농지한계선이 무너집니다. 농지가격도 오르고 있습니다. 농지규제의 완화는 농지투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농지를 놀리는 부재지주 1만명이 적발돼 처분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번 강제처분대상 농지규모만 1802ha로 나라 전체 경지면적의 0.1%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귀농하려고 전국으로 땅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농지가격을 끌어올린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오른 곳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 귀농선배들을 만나면 좋은 땅이 있으면 바로 사라고 하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땅값이 한해가 다르고 정착을 하려면 얼마 되지 않아도 자기 땅이 있어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새겨들어야지 곧이곧대로 듣진 마세요. 좋은 땅은 농사경험과 안목이 생길 때 보이는 법입니다. 잘 알고 믿을만한 사람이 적당한 땅을 소개했을 때는 꼭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땅을 사는 것은 결혼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귀농선배가 말하길 인연이 있어야 한다,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고도 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버리고 따라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땅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처음 봤을 때 내가 빠진 매력으로 살아갑니다.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점차 사랑을 완성해 가는 게 더 인생의 맛이지 않겠습니까.

인연이라고 하지만 악연은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농지구입을 위한 유용한 상식 몇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이른바 5W(won, water, way, with, work)인데 기억하기가 좋습니다.

값싼 땅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적당한 가격(won)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고지대로 주변에 나무와 숲이 없다면 물(water)문제를 신경써야 합니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지하수를 파지도 빌리지도 못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맹지(way)는 실제 길은 있으나 지적도 상에 길이 없는 땅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의 땅으로 둘러싸인 땅입니다. 이런 땅을 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농지가 맹지입니다. 도로사용 확인서를 받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길의 확보가 전제되고 난 후 사들여야 합니다. 현황도로만 보고 매입한 후 고생한 사례가 많습니다. 함께(with) 살 배우자나 동료의 마음에도 들어야 합니다. 농사를 함께 할 사람의 동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를 짓기 전에 이 땅에 어떤 작물(work)이 잘 자라는지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은 마을로 이뤄진 공동체라기보다 작목반으로 뭉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농사를 짓게 될 지 고려해서 토질과 환경에 맞는 농사계획을 큰 그림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3_내 집 짓기, 혼자하기는 힘들어…창고부터 지어보세요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푸른 초원위 그림같은 집
혼자 만들겠다 생각했다간
되돌리기도 힘들고 쉽지 않아
건축학교·워크숍 가보고
여유있게 준비하는 게 바람직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뤄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스콧 니어링의 좌우명 중에 하나입니다. 수많은 예비귀농자의 롤 모델이 됐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비판적인 활동으로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귀농한 지식인입니다. 1952년 스스로 돌집을 짓고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귀농학교 초기에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귀농동기를 조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반수 이상이 스콧 니어링의 삶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균형 잡힌 인격체를 위해 자신의 힘만으로 집을 짓고 농사로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특히 전혀 경험이 없던 전직 교수가 집을 스스로 지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심지어 그의 삶을 똑같이 실행해 보고자 돌집을 지은 귀농자도 있습니다.

식, 의, 주라고 얘기하듯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의 출발은 농사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것이 우리들 마음입니다. 귀농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계획하는 일이 있습니다. 살 집의 평면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부부가 둘이서 고치고 또 고치고 밤이 지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집짓는 일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선배들 특히 혼자서 집을 지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또 다시 집을 짓고 싶은지요. 대답은 단호합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 제가 아는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합니다. 집부터 짓지 마라, 농사를 지으려면 창고부터 지으라. 제발 혼자서 지으려고 하지마라, 정 짓고 싶다면 개집부터 지어보라고 충고합니다. 개집도 집에 필요한 기둥과 도리와 보도 만들고 서까래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모서리를 깍지 끼듯이 맞추는 사개맞춤도 못하리란 법이 없습니다. 개집은 부담도 없습니다. 개집을 지었는데 개가 집을 들어가려하지 않는다면 바닥방수를 하지 않아 물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에 진짜 집을 지었다면 불을 때도 따뜻할 리 없으니 큰일입니다. 그러나 개집은 달랑 들어서 옮겨놓고 기초공사를 다시하면 됩니다.

저도 제 집을 제 아들과 함께 짓고 싶습니다. 시간을 두고 준비하려 합니다. 먼저 뒷간을 짓고 연장과 곡식을 넣어둘 창고도 지어보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해도 문제가 될 리 없고 스스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농한기를 이용해 집짓기 교육에 참가해서 건축에 대한 일머리도 익혀두려고 합니다. 자재에 따라 통나무, 흙부대(earth bag), 스트로베일을 활용한 생태주의 방식의 다양한 건축학교나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태주의 건축이라면 흔히 자연자재에만 집중하기 쉽습니다만 생태건축의 핵심은 에너지입니다. 자연에너지를 활용하거나 단열해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재활용자재의 활용도 고려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내속에 남다른 끼를 발견할 지도 모릅니다. 농사를 쉴 때 목수를 따라다니다 보면 부수입도 생기지 않을까요. 일도 배우고 돈도 벌고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4평 규모의 구들방이라면 모르겠으나 집짓는 과정 모두를 혼자서 해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합니다. 벽돌을 쌓는 조적 일은 숙련된 기술입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삐뚤빼뚤한 벽체를 참고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건축학교를 운영하는 분이 건축주 학교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건축주가 시공주가 돼 도면을 디자인하고 자재를 선택하고 전문인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혼자서 집을 짓기는 너무 힘들고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직접 짓든 남한테 맡기든 집짓는 일로 10년 늙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집은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보수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수리도 남한테 맡긴다면 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건축주가 시공을 맡고 웬만한 목공일은 직접 해 건축비의 반으로 집을 지은 사례가 많습니다. 여유 있게 준비한다면 비용도 시간도 고생도 덜 하는 내 집짓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4_달라도 너무 달라…한 발짝 물러나 마을 주민부터 되자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불쑥 찾아오고 시시콜콜 간섭
도시생활 익숙한 이들에겐 충격
문화 차이 인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되레 상처만 입고 이방인 될 수도
공짜는 없는 법…억울해하지 말길
“장자에 송나라 상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송나라 상인이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가서 장사할 계획을 했습니다. 부자가 될 꿈을 품고 월나라로 들어간 송나라 상인은 월나라 사람의 차림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 모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묻습니다. 이대로 월나라에 머물러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송나라로 돌아가야 할까요.

귀농해서 생계의 어려움 보다 농촌의 낯선 문화에 힘들어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 반목과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등을 돌린 채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견디다 못해 다시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재귀농하는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세상에 온갖 갈등이 많지만 원주민과 귀농자의 갈등만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살아온 방식이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아파트 문만 잠그면 옆집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 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남의 집 젓가락 개수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산다는 건 문화충격에 가깝습니다. 불쑥 안마당으로 들어와서 장독을 열고 장맛을 본다든가, 어느새 텃밭에 제초제를 뿌려놓고 가기도 합니다. 이쪽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간섭이라고 하지만 저쪽에서는 쓸데없는 과민반응이라고 봅니다.

그나마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어 새로 들어온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표시니 고마운 일입니다. 따돌리거나 냉대하는 경우도 있어 10년이 지나도 이방인으로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시는 관계가 필요조건이지만 농촌은 관계 자체가 충분조건입니다.

문화의 차이를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마을을 겉돌게 되고 상처만 깊어집니다. 가지고 온 모자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머리를 짧게 깎거나 문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활한복을 입고 꽁지머리를 한 채 큰 개를 끌고 다니거나 동네 분위기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복장도 내 마음대로 못하냐고 억울하겠지만 마을에 동화되기는 고사하고 별종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애써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마을사람이 되고 나서 내 개성을 발휘해도 늦지 않습니다. 귀농자도 새로운 환경으로 힘들겠지만 원주민도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으로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한 귀농선배가 귀농한지 얼마 안 돼 읍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어르신이 ‘자네가 유기농 한다는 사람이냐’고 알아보더랍니다. 괜한 구설수로 선입견이 생기면 나중에 오해를 푸는 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대개 사소한 것에서 갈등의 씨가 싹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리어 행동거지나 차림이 원주민보다 더 원주민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떨까요·

새로 터전을 잡으려고 하니 조심해도 부딪치는 일이 많습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 풀씨가 넘어온다고 야단맞고 농사가 서툴다 보니 참견도 많이 듣습니다. 내가 산 땅이지만 이미 짓고 계신 분이 있어 바로 농사짓지도 못하고, 딸린 집도 창고로 쓰고 있어 임시 거처를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밭을 빌렸는데 임대료를 턱없이 올려 받거나 길을 내어주지 않아 비싼 값을 치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농한 게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정말 억울합니다. 그래도 너무 억울해 하지 마세요.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만일 터무니없으니 법대로 하자고 결판을 내고자 멱살잡이라도 한다면 마을에서 내편은 사라집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도 한 발짝 물러서면 거꾸로 마을 모두가 내편으로 돌아설지 모릅니다. 손가락질은 내가 아닌 그 사람한테로 향하게 될 테니까요.

굴러온 돌한테 발등 다친다고 합니다. 별 일 없이 계속 해오던 일이 갑자기 틀어지게 생겼다면 아무리 정당하다고는 하나 분하고 아까울 수가 있습니다. 아파본 의사가 환자를 더 잘 보살핀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얕잡아 보곤 합니다. 텃세가 심하다고만 하지 말고 처지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혼자만 살 순 없고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인걸요. 황지우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타심은 이기심이지만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5_귀농, 인생을 거는 일…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귀농하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시지요.”

“아니 귀농하려고 한다니까요, 참 답답하네! 절차를 알려 달라구요.”

“절차? 아, 자금지원 때문에 그러시군요?”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네.”

전화로 귀농상담을 받다보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돼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난 3월 개소한 귀농귀촌종합센터(농촌진흥청)에서 한 달간 상담한 5000여건의 내용 중 70% 이상이 지원정책과 금융지원에 집중됐다는 자체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생활자금이나 신용불량자 구제방법에 대한 문의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운 도시민들이 귀농을 돌파구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스컴과 정부는 언제부터인가 ‘블루오션’에서 ‘억대농부’를 농업의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습니다. 장관도 나와서 귀농귀촌을 정책브랜드로 삼겠다고 하니 귀농하는 절호의 찬스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급해집니다.

TV에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의 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글쎄, 그럴 리가요. 생각보다 힘듭니다. 도시에서 잘 살던 사람이 시골에서도 잘 정착합니다. 도시에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시골에서 인생역전을 이루는 드라마 같은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성공을 보는 관점이 고소득 창출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귀촌이나 전원생활을 제안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상담결과처럼 밥벌이도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돈벌이가 된다며 꼬드기는 짓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귀농은 단지 이사를 가는 일이 아닙니다. 이민을 가듯 모든 것을 정리해 새로운 터전에 나머지 인생의 전부를 거는 일입니다. 무책임하게 귀농귀촌을 국가가 이렇게 장려해도 되는지 걱정입니다.

오히려 과도한 귀농현상을 걱정하고 농업농촌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신중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귀농은 단순한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삶의 뿌리를 옮겨놓는 결단이다, 소득이 높진 않지만 식량안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대안이다, 자연과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솔직히 알려야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귀농본부의 생태귀농학교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귀농해 잘 정착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지금 귀농해서는 안 될 사람이 귀농을 성급히 결정하지 않도록 말리는 일입니다. 자기점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귀농학교입학원서에 내가 귀농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꼭 써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에서는 내가 정말 왜 귀농을 하려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농업이 돈이 된다. 그러니 농촌으로 와라. 아낌없이 지원해 주겠다. 속지마세요. 농업은 돈벌이가 아니고 큰돈을 만질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도 될 만한 지원은 없습니다.

농업인재개발원이 201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자의 구체적인 동기는 ‘도시보다 농촌생활이 좋아서’, ‘은퇴 후 여가를 보내려고’,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가 대부분이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한 경우는 1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농사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참 행복을 찾고자 귀농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귀농입니다.

하지만 귀농교육도 처음부터 환금작물에 집중해서 품목이나 기술교육에 목을 매지 마십시오. 농사경험이 전무한 초보자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농사의 특성상 제대로 교육을 받으려면 긴 기간이 필요하고 품목요구에 따라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습니다.

자신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되는 적절한 시기는 귀농 이후 3~4년차입니다. 실제로 그때가 돼야 안목도 생기고 절실해 집니다. 교육과 정보에 대한 욕구도 지역과 현실에 맞고 정확해 집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때가 될 때까지 기본에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6_돈 아닌 행복을 선택한 ‘자발적 가난’의 즐거움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생태귀농이고 자립농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우리를 보고 낭만귀농이라고 부릅니다. 현실을 잘 모른다고 비꼬는 말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꿈과 이상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입니다. 다가올 석유고갈 시대를 대비해서 옛날방식 그대로 소로 밭을 가는 교육도 하고 있으니 그런 얘기를 들어도 이해가 갑니다. 시대와 참 동떨어져 있지요.

어떤 분이 귀농을 했는데 소득이 너무 없어 힘들었습니다. 초짜 농부가 키웠으니 작물의 모양새는 시원찮을 것이고 팔 만한 곳도 없으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나가기만 했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농지도 더 빌리고 기계도 장만해서 규모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수확 철이 다 돼 사람 품이 많이 필요한데 품값을 치를 돈마저 떨어져 걱정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맡겨두고 도시로 나가 예전에 하던 목수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밖에서 벌어온 돈으로 품값을 치르는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답니다. 분명 효율성과 이윤만을 따진다면 이게 나은 방식인데 말이죠.

함께 밥 먹는 입이라고 식구(食口)인데 최소한 밥은 같이 먹자며 가족이 함께 귀농하신 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이 자주 함께 밥 먹는 풍경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본인은 농사일로 바빠지고 큰 아이는 인근 도시로 유학 나가서 따로 살고 아내는 교육비가 걱정돼 부업을 하니 가족이 다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습니다. 그 분 말로는 도시생활보다 더 얼굴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한가로운 어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낮에 해변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어부에게 사업가가 뭐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어부가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 쉰다고 하니 사업가는 답답하다는 듯 시간이 있을 때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혀를 찹니다. 어부가 묻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하려는 거냐고. 그야 멋진 차와 좋은 집을 얻을 수 있고 편리하고 편한 삶을 살게 돼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냐고 당연하듯 대답합니다. 그럼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 하냐고 어부가 되묻자 사업가는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모든 대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많은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좇다가 젊음도 가족도 건강도 잃어버립니다.

“손안의 새 한 마리가 덤불속의 두 마리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확실히 갖고 있는 것이 앞으로 얻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잡은 고기보다 앞으로 잡을 먹이들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동물들은 결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린 만큼 자연과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욕심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소를 타듯 한 쪽은 돈벌이(필요에 의한), 다른 한 쪽은 행복(지금 바로 여기의)을 놓고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어찌됐든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겁니다. 소득이 그래도 중요하다면 광부처럼 밤에 랜턴을 켜고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중심을 행복에 두면서 스스로 가난해 지겠다고 하면 풍요롭지는 못해도 더없는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한다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지만 자신의 뜻과 의지로 단식을 한다면 수십 일도 가능합니다. 강요된 가난은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다면 다릅니다. 그것을 자발적 가난이라고 합니다. 월 소득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숫자일 뿐입니다.

7_‘농사는 자연이 짓는다’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비료와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학농법이 관행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한 줌의 비료가 주는 마법과 같은 맛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퇴비로 환산하면 수십 배를 줘야 합니다. 퇴비재료는 얼마하지 않지만 그 많은 부피와 무게를 갖고 오는데 비용이 더 나갑니다. 퇴비를 놓을 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재료를 섞어 뒤집고 발효시키고 밭에다 뿌리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비료만 자꾸 주게 되면 지력이 떨어지니 병이 잘 옵니다. 약을 쳐야 합니다. 제초제를 뿌리는 촌로에게 농사를 잘 모르는 초보 귀농자들이 땅을 죽이는 일이라고 어설픈 참견을 합니다.

“땅이 죽는다고? 흥, 해마다 뿌려도 풀만 잘 나오고 있구먼, 풀매기가 만만해? 그래 땅 한번 살리고 니가 죽어봐.”

아마 촌로의 이 마음은 풀을 매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유기농이 대세이니 유기농을 해야 할 듯한데, 말은 쉽게 뱉어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비닐과 트랙터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요?

비료와 농약에서는 해방됐지만 유기농이라도 아직 석유의 도움 없이 농사짓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석유라는 값싼 에너지가 고갈돼가자 석유 기반의 유기농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닐로 덮인 이랑에서 자라는 작물이라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 제초제, 살충제가 없는 유기농 기준에도 부합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먹을거리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무비닐재배’라는 등급이 생기고 있습니다.

트랙터와 같은 무거운 기계들은 흙을 다지고 분쇄합니다. 토양생태계는 망가지고 지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계에 의존하면 땅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습니다. 밭에 앉으면 땅과 작물 사이에서 교감을 느끼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얼른 해치워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기계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토양에 문제가 되거나 농심을 망치는 기계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의심과 반성을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진실, 이제 유기농도 관행이 되고 있습니다. 유기농을 성찰하는 진짜 유기농, 초유기농이라는 용어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이 유기농을 주도하는 상업화된 유기농인증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제철꾸러미 같은 회원직거래가 더 신뢰가 갑니다. 인증 딱지 보다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풀을 먹고 자란 닭을 먹어야 덜 미안합니다. 기적의 사과로 유명한 무투입 방식의 예술자연농법을 시도하는 농가도 늘고 있습니다. 사과의 부패실험에서 관행과 유기재배 사과는 썩어 가는데 기적의 사과만 말라가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유기농도 관행농과 다를 바 없이 퇴비를 과도하게 주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퇴비로 질산염을 축적시킨 채소는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은 더 높은 수준의 유기농을 요구하니 짜증이 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agriculture는 agri(흙)+culture(경작)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흔히 이것을 두고 농업을 땅을 가는 일이라고 풀이하지만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라 흙이 경작한다로 읽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흙이, 수많은 토양미생물이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조력자일 뿐이라고 정리하면 단순해 집니다. 인간은 복잡하고 진실은 단순합니다. 무비닐, 무경운, 무투입. 인간이 개입할 일이 줄어들면 비용과 에너지도 줄어듭니다. 물론 기적의 사과가 9년 만에 열린 것처럼 흙이 그렇게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해마세요, 거저 얻는 것은 없습니다.

농업의 농(農)자를 별 진(辰)과 노래 곡(曲)을 결합해 만든 글자로 풀이합니다. 해와 달과 별을 헤는 마음, 우주의 이치를 읽는 지혜가 농사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기운(辰)이 밭을 갈아서 작물이 자란다(曲)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새벽 별(辰)을 보고 나가서 허리 굽혀(曲) 일해야 하는 고달픈 노동이 농업입니다.

8_비용 아끼려고만 선택한 공동체라면…실패하기 십상

이 글은 2012 농어민신문에 박용범 사무처장이 연재한 글입니다.

혼자 귀농하려니 자신이 없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봅니다. 함께 하기는 둘째 치고 귀농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귀농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기들이라면 서로 큰 힘이 될지 모릅니다. 교육기간 동안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기울인 적도 참 많았습니다. 귀농이란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함께 귀농하기란 생각할수록 장점이 많습니다. 집을 같이 지으면 비용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농기계도 공동으로 구입해 사용하면 이득이지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서 마을을 만든다면 기반조성에 들어가는 큰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단점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정작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리 잡았다는 귀농공동체도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물질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이득이지요. 비용을 많이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용을 아낀 만큼 함께 준비한 재원은 차후에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유가 없는 아주 원칙적인 공동체라면 몰라도 경직되기 마련입니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큽니다. 이상을 너무 높게 설정하니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자신은 중학교의 수준인데 대학 수준의 원칙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은 아침에 하고 낮에는 쉬었다가 해가 지면 다시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이 곧바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힘든 노동일을 하기는 무리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형편에 맞게 해야 하는데 대개 공동체는 원칙과 이상에 치우치기 마련이라서 이런 일을 쉽게 결정해버립니다. 평소 7시에 일어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려고 힘겹게 5시에 일어나지만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공동체가 어려운 게 됩니다. 누구는 일어나고 누구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됩니다. 마음이 각박해 집니다. 십시일반으로 장애가 있는 동료의 밭을 돕기로 했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할 것보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에만 정신을 온통 뺏기고 맙니다. 사소한 갈등으로 등을 돌리거나 떠난다고 하지 원칙이 문제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높은 이상과 잘못된 원칙이 사람을 갈라 놓습니다. 만일 초등학교의 수준으로 낮은 원칙을 정했다면 쉽고 편한 여유가 있었을 겁니다.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내 몸이 힘들지 않으니 주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까지 말하니 공동체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느낌만 주는 듯합니다. 공동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용을 아끼는 것만으로 공동체를 꾸리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소통입니다. 종교 공동체가 잘 정착하는 것도 종교라는 소통구조에 있습니다. 사람간의 소통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원인에는 꼭 성급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빨리 자란 풀이 빨리 삭습니다. 자연멀칭도 풀로만 부족합니다. 퇴비도 쉽게 분해가 되지 않는 목질퇴비가 오래 갑니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가 부부입니다. 부부도 귀농해서 농사일로 서로 마음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랑이 좁네, 넓네. 파종 간격이 너무 배네. 사사건건 논쟁거리입니다. 부부끼리 설득이 가장 어렵습니다.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시비에 지친 나머지 서로 역할을 나눕니다. 당신은 농사, 나는 판로를 맡고 서로 간섭하지 말자.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농사를 같이 짓는 부부가 드뭅니다. 지어도 따로 짓습니다. 영역이 다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귀농을 하는 것은 봉사가 봉사를 이끄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앞을 볼 수 없으니 누구 말이 옳은지 결론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일이나 삶의 지혜가 많은 분이 있는 곳의 공동체가 오래오래 유지됩니다.

공동체도 좋지만 먼저 마을로 들어가서 살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 땅의 역사와 마을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이끌어 줄 분들이 이미 살고 있습니다. 귀농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어떤 분에게 공동체를 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함께여서 좋았고 또 함께여서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