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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러워라
글쓴이 농부이반 작성일 2017-05-17 21:29:28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러워라

 

 

귀농 초기에 지역민으로부터 품앗이 요청을 받으면 바짝 긴장하고 가는 집이 있었다. 농사 규모가 꽤 되는 대농인데다 온갖 농기계를 갖추고 로터리 작업에서 수확까지 남의 일을 대행해주느라 온 가족이 일년내 바쁜 집이었다. 그런데도 표고버섯까지 손을 대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나르느라 농한기가 따로 없었다. 이렇듯 복잡한 농가 살림을 주도하는 분은 그 집의 어르신으로 근동에서도 부지런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때문에 봄철에 며칠간 이어지는 종균 작업에 갈 때는 마치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신자처럼 늘 속으로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는, 스스로에게 요청했던 주문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그 집의 일은 강도가 만만치 않았다. 한 번 상상해보시라! 산에서 묵직한 참나무를 굴려 경운기에 옮겨 싣고 다시 며칠동안 나무에 구멍을 뚫는 광경을…. 문자그대로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래도 요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큰 아이의 둘도 없는 친구네인데다 시골에서 겪는 어려움은 정면으로 맞선다는 원칙과 오기도 한몫했다. 어차피 귀농이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으니 통과의례는 흔쾌히 맞을 심산이었다. 이런 결심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깐깐한 어르신께 “아리수 아빠, 좀 쉬어가며 혀”라는 권고를 여러번 들었다. 귀농 실습생들이 농가에 배치되면 쫒아다니며 일을 시키는 통에 굉장히 힘들었다는 분이었으니 어지간해서는 일꾼에게 쉬라는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솔직히 작업을 함께하는 그 동네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매사 이렇다보니 재미난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염소를 몇 마리 먹일 때는 한 번도 배합사료를 주지 않고 키웠는데 풀을 먹이기 어려운 겨울에는 집 주변의 대나무 잎을 주식처럼 먹였다. 넓은 염소 우리에 대나무를 통째로 얼기설기 걸쳐주면 며칠 뒤에는 잎사귀를 깔끔하게 뜯어먹어 빗자루감으로 그만이었다. 겨우내내 먹이면 많은 양이 나오는데 이걸 다발로 묶어 가까운 이들에게 나눠드렸다. 대비를 맬 때 번거로운 잎 제거가 필요없어 모두들 반겼던 기억이다.

 

나눔은 비단 대나무뿐만 아니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쭉 진행형이다.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첫 수확물은 주변과 나누고, 수확할 때 일꾼을 부르면 귀한 것들은 조금씩이라도 들려보냈다. 새 집을 지으려 집을 철거할 때도 굴착기 대신 기둥에 와이어를 걸어 트랙터로 당기며 조심스럽게 해체하여 창호와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은 창고에 보관했다가 집을 고치는 후배들에게 건넸다. 이러다보니 지역에서 쓸만한 씽크대나 물품들이 나오면 창고에 쌓아두는 통에 ‘제발 좀 그만하라’는 아내의 성화가 끊이지 않는다. 하기는 이십년 가까이 그래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며칠전에도 컨테이너를 옮길때 나온 넓적한 블럭을 어디에 쓸까 고심하다 냇가의 봇물을 논으로 푸는 양수기 받침대로 쓰면 좋을 것 같아 몇 개를 양수기 두는 곳에 갖다 놓았다. 며칠 뒤 양수기를 설치하던 논이웃 한 분이 “자네지? 역시, 자네가 갖다놓은 줄 알았네”라며 듣기 민망한 찬사를 이어가셨다. 냇가 중턱이라 양수기를 고정할 때마다 바닥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 고마움이 컸던 모양이다

 

이렇게 평소 다른 이의 필요를 잘 생각해보면 내겐 소용이 없어도 누군가에겐 절실한 필요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고 창문과 씽크대, 대나무와 하우스에서 벗겨낸 폐비닐까지 모두 귀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시쳇말로 없거나 아쉬운 이들에겐 그야말로 득템의 기회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먼저 무언가를 주고 돌아오지 않는 예를 거의 보지 못했다. 도시나 시골이나 서로 어울려 사는 세상엔 주고 받고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동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받고나서 갚지 말고 먼저 주는 이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까짓 거 답례가 없으면 또 어떤가. 주는 순간에 이미 내 맘과 삶이 더 풍성해지는데…. 차야 넘치는 게 이성의 원리라면 부족해도 덜어내면 더 풍성하게 채워지는 건 세상사 삶의 법칙이리라.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럽게, 도시보다 발걸음을 한 발짝 더 느리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날마다 작물의 자람세를 세심히 살피고 돌봐야 하는 농부의 일상이 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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