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길잡이 > 사랑방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이야기 마당입니다.

제목 농업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어갈 수 없습니다
글쓴이 농부이반 작성일 2017-05-17 22:36:29

안녕하세요?

충남 홍성에 사는 귀농 선배입니다.

선생님께서 올린 글에 답글을 작성하기 어려운 까닭은 아마도 질의가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이어서 그럴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제가 누군가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상대 역시 두루뭉술한 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질문이 구체적이어야 그에 상응하는 정보나 안내를 받으실 수 있게 되겠지요.

물론 선생님의 질문은 ‘귀농에 한정된 것이어서 앞서의 예보다 범위가 좁혀지기는 하나 답을 드리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딸기 재배용 하우스를 관수시설 포함해 2중으로 짓는데 얼마나 들까요?”라고 하면 저는 홍성의 시공비를 올려드릴 수 있지만 이 또한 파이프의 두께, KS 여부, 활대의 간격, 수막시설 설치여부, 비닐의 두께, 자동개폐기 설치 여부 등등에 따라 편차가 납니다. 눈에 보이는 하우스 한 동을 가늠하는 견적조차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삶을 안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이겠습니까?

하여, 올려주신 글을 토대로 오히려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귀농을 돌파구로 생각하는 까닭이 무엇인지요? 또 막연하마나 농사를 어떻게 지으려 하시는지요? 하고 싶은, 혹은 잘 하실 것 같은 품목은 정하셨는지요?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어디서 사시고 싶은지요? 막내는 몇 살이고 어린이 집을 다녀야하는지요? 등등 여쭐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나름대로 앞으로의 시골살이를 유추해보면 집과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지으셔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쉽지 않은 일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겠지만 저희 지역을 기준으로 수리하지 않고 바로 들어가 살 수 있는 농가를 구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농지 역시 지금은 임대로 나오는 시기가 아닙니다. 한참 농사가 진행되는 때이거든요. 간혹 질병이나 사고로 집과 농지가 급히 임대 물건으로 나오는 때가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때문에 우선 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비롯한 도시의 귀농학교를 이수하시거나 하다못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귀농 투어 혹은 장단기 귀농교육과정에 등록하셔서 배우는 과정을 통해 막연한 생각과 의지를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일련의 교육과정을 통해 손에 잡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이후 앞으로 살고 싶은 귀착지를 찾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사는 도시와 빈번히 왔다갔다 하실 분이라면 당연히 너무 먼 곳은 오가기가 쉽지 않겠지요. 선생님의 구체적인 처지와 상황을 알기 어려워 이 부분은 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여튼 귀착지가 정해지면 해당 지자체의 귀농 투어 등을 통해 더 자세하게 지역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해당 지자체에 귀농지원센터가 있다면 문을 두드려보시고요 방문하셔서 빈집이나 귀농인의 집에 입주가능한지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다른 지원책도 있는지 점검하시고요. 이 과정을 통해 삶터가 정해졌다면 마을 대표(이장님 등)를 만나셔서 인사를 드리시고 그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실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만일 지금같은 농번기에 들어가신다면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서 수고료를 받으시며 일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읍내의 용역 등 일자리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해남같은 경우 일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용역업체에 의뢰하면 매일매일 일할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용이 매우 안좋다하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만약 신용불량의 경우 안타깝게도 귀농인 대상의 창업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니 꼭 농사를 지으시려면 우선 임대로 시작하여 법적인 농민 자격을 얻으시고(토지, 축산 등등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적인 경우 농지를 일천㎡(302.5평 이상) 이상 소유하거나 임대하셔야 합니다. 하우스나 버섯재배사 같은 노농집약적인 경우는 백평 이상이면 됩니다.(보다 상세한 사항은 인터넷을 검색하세요)

유념하셔야 할 사항은 농사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돈을 만들기도 쉽지 않지요. 수천평을 짓는 농민이 농한기에 틈틈이 이른바 노가다나 미장, 조적 등 건축관련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십년전 30호가 채 안되던 저희 마을에도 농업과 건설 노동을 병행하는 분도 다섯분 이상이었습니다. 그만큼 농사가 녹록치 않음을 반증하는 겁니다. 그런만큼 귀농이 돌파구가 될 것인지는 선생님 스스로에게 아주 여러번 물으셔야 합니다. 때론 어떤 분의 고백처럼 도시의 최하 노동자로 사는 것이 백번 나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 이 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분의 표현임)

워낙 포괄적인 질문을 하셨기에 과거 제가 썼던 짧은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할 일이 없으면 제자리에서라도 뛰어라!” 인데 출발선이 한참 다른 선생님은 거기에 (죽을 힘을 다해)라는 말을 더하셔야 될듯 합니다.



도시에서 무언가를 하다가 풀리지 않으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라고 한단다.

농사는 그리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농사(農事)란 별의 노래,

해와 달의 리듬에 맞춰 농부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의 단꿈 뒤에 가려진

고단하고 땀내나는 농부의 일상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어갈 수 없기에

도시인의 꿈속의 농사와 시골 농사꾼의 꿈은

한 번도 맞닿은 적이 없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묻고 묻고 또 물어 도달한 귀착지가 시골이 아니라면,

농사가 가슴속에 뜬 별이 아니라면,

단언컨대 더 이상 농촌에 구원은 없다.

다음글 :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이전글 :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러워라